한국과 캐나다의 차이
한국에 갔다 온지도 벌써 2주가 지났네요.
시간이 왜그리 빨리도 가는지...
아직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돌아 오자 마자 찾아 간 전번 직장에선
이미 정리해고 되었죠.
봄에도 일시 해고 되어서 일을 별로 못했는데
올해는 여름 몇달만 일을 하고 계속놀아도 된다는 운세인가 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요.
봄에 차도 못쓰게 되어 바꾼데다가 쓰임새가 많아 힘든
한해 인가 봅니다.
그래도 일자리도 잡고 잘될거라는 믿음으로 굳세게 견디고 있읍니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때 건널목을 건너다 아주 소스라치게 놀랐답니다.
왜냐면 길중간쯤 건너가는데 차가 오면서 서지 않고 빵빵 경적을 울리면서 획지나가는 겁니다.
이곳같으면 위험한 운전으로 운전면허 정지될수도 있는 사안...
이곳 벤쿠버에선 언제든 내쪽에 파란불이 들어와 주행중이라하더라도 행인이 건너면 서야하는 걸로 알고 다들 그렇게 하는데 한국의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는 난 한국와선 운전 못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또다른 사건은 고속버스에서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앞에 승용차가 꾸물데니 운전기가가 갖은 상스런 소리가 나오는데
내가 얼마나 민망한지....
이곳의 지도는 정말 잘되어 있고 집집마다 번지를 써붇여서
지도만 들고 모르는 곳을 찾아 가는게 그리 이상한 것이 없고
어려울것도 없는데 한국에서 아버지 열차사고 현장에 동생하고 갔다가 오면서 중간에 작은 타운에서 길을 잘못들어 한참을 산길로 돌다가 겨우 빠져나와 길을 묻고 물어서 집까지 돌아 온 적이 있읍니다.
사고 지점은 내수역이었고 내수역에서 현장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흔적이나 단서를 찾지못하고 그냥 그 지점이 곡선이라는 것만 확인한체 오근장역에 가서 역장에서 위로의 말을 듣고 돌아 오는 길이 었거든요.
진천에서 길을 따라 들어가니 시장통인겁니다.
이런 길을 잘못든거라고 동생한테 말하고 지도를 보면서 이쪽으로 가라 하고 가르킨 곳이 지름길이 아닌 다시 온길로 돌아 가는 길이었답니다.
그리고 물어서 다시 국도를 따라 올라올때는 지도 보다 더 올라와서 제천방향으로 길을 틀었죠.
그래서 많이 돌긴 했지만 집을 찾아 올수 있었는데
내가 속으로 다른 나라인 캐나다에선 길을 잃어도 물으면 금방찾고 지도만 있으면 걱정을 안하는 데 태어난 한국에선 오히려 헤맨다는 생각이 드는거 있죠.
내가 한글을 읽을줄 알고 한국말을 하는데도 이런데
만약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외국인이 차를 운전하면 더 헤메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곳에선 상가집에 가도 그저 추도 예배하고 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나면 되는데 한국에선 아직도 곡을 해야하고 상복을 입어야 하고 장의업을 하는 곳이 많은것을 보고 한편 한국이 사람사는 것같고 정많은것 같으면서도 말또한 많다보니 캐나다식이 나은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죽으면 어찌될까하는 생각도 하면서 한국에서 몇사람이나 올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아주 초라한 상가집이 그려 지더라구요.
물론 그렇게 안될수도 있고 먼후일의 일이지만 막상 일을 치르고 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한국에 있으면 여기 저기 부조를 해서 관혼상제때 동네사람도 오고 아는 사람 직장인도 많이 오겠지만 이곳엔 이민 사회인데다가
내가 교회를 안나가고 절에서 가끔씩 나가다 보니 만일 큰일이 닥치면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겁니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한국처럼 일을 봐주는 것도 아니다보니...
동생직장에서 장례때나 동생결혼식때 일을 많이 도와주는 것을 보면서 역시 내라라가 좋긴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약 내가 한국에 돌아 간다면 다시 월세방생활을 할 것과 아이들을 외국인학교에 보내야하는데 학비며 이런생각을 하니 돌아 가는게 엄두도 안나는 겁니다.
20년후쯤이면 아이들이 결혼을 할 것인데 다른사람들경우를 보면
한국사람하고 결혼하리라는 보장이 없고 특히 딸은 외국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노후걱정이 되는 겁니다.
이곳의 관습은 나이가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해서 나가 살면서
가끔 부모를 찾아 오기만 해도 효자이고 전체가족이 모이는 것은
종교때문에 교회에서 사찰에서 만나거나,생일,이곳명절(추수감사절)등인데 그리고 이민와 10년동안 명절한번 명절처럼 지내지 못했는데 걱정이 되는 겁니다. 자녀들이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보단 다른 캐나다 사람으로 살게될것 같은 상황에 대한 걱정...
추석은 쉬는 날이 아니고 구정도 쉬는 날이 아니니 출근하기 바빠 명절인것 같지도 않고 추수감사절은 또 우리 명절이 아니니 남의 다리 끍는 듯해서 못지내는 이민자의 비애.
물론 적극적으로 이곳에 적응하고 살아 가야 하지만 옮겨심은 나무가 새로운 땅에 적응을 못해 말라가는 것같은 느낌입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그렇지만 우린 불자니까 크리스마스 상관없어 하고 나면 이곳의 큰명절이 또 그냥 지나가는 겁니다.
가족의 장남으로써 해야 할 의무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경제적인,문화적인 ,지리적인 요건때문에 제대로 못하면서 가슴만 답답하고 해서 차에서 이번에 사온 문희옥노래테이프를 틀고 다니니까 신디토미가 놀립니다.그노래 한국에서 유명한거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