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상가집에 가시고
엄마와 누나는 안방에서 자고 동생과 난 웃방에서 자고 있었다.
몇시나 되었는지 알수 없었지만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신음과 비명소리에
잠을 깨어 문을 열다 멋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옆집의 수북이 아버지가 주먹으로 발로 사정없이 구타를 하고
팔을 끌어다 문지방에 올려놓고 꺽어버리겠다고 하고
아버지는 비에 옷이 흠뻑젖고 온몸이 흙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
동생도 잠에서 깨어서 놀래서 한쪽구석에 쭈구리고 있다.
그리고 얼마가 흐른후 사람들의 말소리가 나고
한참후에 경찰의 소리가 났다.동생은 그제서야 울음을 터트렸고
나또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워있는 안방으로 갈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맞고 있었는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그냥 굳어 버린듯한 느낌,겁에 질려 약간은 벌어진 입을 하고
평소에 수북이네집에 자주 놀러가고 만화책도 많이 봤었는데
수북이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안방에 내려와서 누워있는 어머니께 가니
어머니가 달려온 동네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자다가 소피가 보고 싶어서 오강을 보니
오강이 차있어 오강을 버리로 뒤뜰에 갔는데
싸리울타리사이로 옆집의 할머니를 두들겨 패는 수북이 아버지가 보이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는 걸 보고 엄마가 다가가서
"수북이 아버지 뭐하는거유 지금?"했더니
다짜고짜 성난 말달리듯이 달려 오더니
"너는 뭐야 이 ㅆ 년아"하면서 넘어 뜨리고 목을 조르더랍니다.
갑자기 목을 졸린 엄마는 바둥거리며 비명을 질렀는데
방에서 자고 있던 누나가 듣고 나와서
"우리엄마한테 뭐하는거야 "하니까
"넌 저리 가"하고 누나를 밀치니 누나는 나가 떨어졌고 그틈에
엄마가 도망을 쳐 맨발로 달리는데 말굽소리같이 달려오는 수북이 아버지에게
잡힐 즈음에 아버지가 오고 있더래요.
그래서 상가집에서 술이 아주 만취되서 오던 아버지가 지금 뭐하는 거냐고 수북이 아버지를
제지하자 아버지를 대신 두들겨 패기 시작하더랍니다.
그사이이 엄마는 이웃집에 달려 갔는데
밤늦은 시간이라 일어 나질 않더라네요.
누나도 도망쳐서 아랫마을에 최씨네 집으로 가서 최씨를 부르고 이웃사람들을 불렀다고
합니다.그리고 이장네 집에 가서 경찰을 부르고...
아침에 엄마하고 아버지는 병원에 가고
수북이 아버지는 몇시간이 지난다음에 늦장출동한 경찰에 잡혀가고
병원으로 공전역에 근무하는 고모부와 청풍에 외삼촌이 달려 오고 늦게서
작은 아버지도 왔는데 아무도 법적인걸 모르고 해서
변호사선임에 돈도 많이 들어 간다고 하니 변호사 선임도 안하고 수북이 아버지 친척이 청주지방법원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어 백을 써서
한달 유치장에 있던 수북이 아버지는 풀려 나오고
2주넘게 병원에 있던 엄마랑 아버지도 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아버지 엄마 병원간사이 우릴 돌봐준다고 작은집에 살던 할머니가 우리집에 와 밥을 해주시게
됐는데 난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라 우물에 물길러 갈때도 졸졸 쫓아다니니
할머니가 이웃아무머니한테
"우리 애들은 안그런데 이집애들은 왜이리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몰러유"한다.
그얘길 듣고부터는 학교에서 바로 십리나 떨어진 병원에 걸어갔다가 다음날 바로 학교로
가곤했다.
엄마도 아버지도 퇴원해 집에 오셨는데 최씨집에 간 누나는 놀라서 집에 올수 없었읍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보시더니 서울에 세브란스병원에 엄마 사촌오빠한테 연락해서
데리고 가게 됐읍니다. 놀라서 먹지도 못하고 우울증세가 심했다고 합니다.
누나가 서울가서 한달입원해 있는동안 엄마가 올라가 있었고 아버지는 부랴부랴 급매로
느쟁이 우리논중에 가장 좋은 논을 팔아 병원비하려고 부치고
조금 남는 돈으로 40만원에 느티쟁이 신작로가 방앗간 윗집을 사서 이사 오게
되었죠.
살던집은 아랫동네서 세살던 점쟁이 아줌마가 10만원에(우리가 그런 사정을 알아서 싸게 후려쳐서)
사서 초가집을 헐고 양옥을 지어 점집을 했답니다.
그리고 나도 그쪽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 고추밭이 그집 아래 있어서
안갈 수도 없었고 가끔 길에서 그 수북이 아버지를 만나기도 했는데
그저 째려 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죠.
그리고 세월과 함께 잊혀져간 그날 일들...
수북이 아버지는 후에 동네 이장까지 하고 과수원도 넓히고 기세 등등해 갔고
아버지는 품앗이 하는 동네일에 안할 수 없다고 그집의 타작일도 하고 했는데
엄마는 그원수 내가 죽어서도 잊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아버지한테 "간도 쓸개도 없냐"고 핀잔을 주셨읍니다.
나도 학교 생활과 직업훈련원을 거치고 군대를 마치고
서울에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였죠.
요리학원 한3달치 학원비와 독서실비 한달치를 내고 나니
내손에 남은 돈이 없어서 시작한 노량진 전철역 건너편의 주점일
주점의 주방한쪽에 쪽방(전기장판 일인용 하나깔고 나면 없는 공간)에서 자고
낮에 학원갔다고 오후부터 12시가 넘게 까지 주점에서 웨이터일을 했죠.낮에 주방아줌마 안나온 시간엔
주방에 가서 매운탕도 끓여서 팔고,술먹고 도망간 애들때문에 돈을 못받아 주인아저씨한테 혼나기도 하고...
주인아저씨와 아줌마가 소주병으로 머리를 때리면서 싸우는 걸보고
학원을 마치자 마자 신림사거리에 양식당에서 요리일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일이 힘든건 둘째고 밤에 자는 우리방이 식당구석에 있었는데
웨이터들과내가 자면 주인아저씨가 문을 걸고 갑니다. 화장실은 밖에 있고
웨이터들이 케찹통에 소변을 봐서 주방하수구에 버리는 걸 보고는
다음날 나 그만 둔다고 하니까 주방장이 사람구할때 까지만 있으라고 해서
일주일만에 그곳에서 나왔죠.
두번째로 학원에서 구해준 곳은
이태원의 스텐드바주방인데 낮에 자고 저녁5시부터 새벽6시까지 영업을 하는 곳이었답니다.
낮에 자려고 하면 지하에 나이트클럽에서 들려오는 빠따 치는 소리에 잠도 못자고
쓸리퍼 끌고 이태원을 돌아다니다오거나 경리랑 안주거리 시장봐오기도 하고 했죠.
장사안되는날 사장이 주방장 가서 손님좀 끌어 오지 해서 놀기도 뭐해 삐끼까지 했는데
몇번 손님들을 데리고 오니 나중엔 조금만 손님이 없어도 주방장이 나가야 손님이 오겠다고
합니다.
한데 어느날 경리랑 사장과의 대화를 무심코 듣게 되고 그들의 사이가 연인사인걸 알게 됐죠.
그리고 조폭두목이고 부인돈으로 스테드바를 하는건데 부인도 본처가 아니고 세컨드고...
3달을 있으면서 월급을 못받은데데 조폭두목이란 정보를 알게되서
예비군동원 훈련간다는 핑계를 대고 시골로 내려가서 있다가
학원친구의 소개로 서울역그릴에 들어 가게 됐고
대방동의 독서실쪽방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죠.그걸 시작으로 내주민등록 초본엔 거주지가 수시로 바뀌어 12번이나 주소지를 옮기고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늦에 대학의 조리과 야간을 졸업하고 특급호텔로 옮기고 결혼을 하고 ...
그런데 애들엄마를 만나기전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병원에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때 의사가 눈을 감고 누우라고 하더니
자 지금 뭐가 보입니까 합니다.
깜깜한 밤...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고,비명소리가 들리고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고
놀라서 몸이 굳어 버린 날 보게됩니다.
그리고일어나 의사와 상담을 하는데 의사가 어릴때 그사건이 잠재적으로 아주 큰충격을 입은것 같다면서 신경안정제와 함께 몇달간 치료를 해보자고 합니다.
해서 치료를 하고 세월이 많이 흘러 이민을 오고 3년전에 아버지가 갑자기 열차사고로 돌아가셔서
장례식이 지난다음에 아버지 영정앞에 서는 순간 다시 그때 일이 떠오르고
소여물썰다 잠시 한눈팔다 아버지 오른손 검지를 자른 일까지 겹쳐 영상처럼 흐르면서
눈물이 쏟아지는데 걷잡을 수 없었답니다.
어머니가 먼길와서 병난다고 고만 하라고 하는데도 그칠수가 없었읍니다.
결국은 몸살까지 나서 입술도 다부르트고 병원가서 주사를 맞고 2주일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돌아 올 수 있어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는데
나의 어릴적 아명 광주리(광우리)는 그렇게 나의생가와 함께 잊혀져 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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