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군을 제대한지도 강산이 두번 변할때가 가까워졌다.
우리 야전정비대대는 끝발 없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대인데 그중에서도 검사중대는 비행기 주기별로 검사를 수행하는 중요한 중대임에도,사고가 나건 안나건 아주 피곤한 중대인데다 9시 정시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하는 몇안되는 부서이다 보니,아주내무반 생활이 고로웠다.
9명이나 되는 동기들,이등병부터 막병장달때까지 사고를 수시로 치는 동기들때문에 또는 아래 쫄따구들 때문에 정말 고참들 한테 맞기도 많이 맞았다.
물론 당시에도 구타금지 지시가 내려오고 내무반마다
구타금지각서를 써서 사인하여 비닐로 싸서 걸어 놓았지만 밤에 점오끝나고 맞기도 하고,아니면 밖에 불려나가서 맞기도 하고,한번은 너무 맞아서 그다음날 외박을 나가는데 외박신고 하러 대대본부에 가다가 계단을 겨우올라가고 물론 버스를 몇번이나 갈아타야 갈수 있어던 시골집까지 가면서 그끌리는 다리고 억지로
시골에 다녀온적도 있었다.
시골이 충북이고,근무지가 경남이다 보니 대구를 거치거나 아니면 아예서울로 돌아 오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 외박엔 반기던 시골의 어머님도 횟수가 늘어나면서 왔냐~~~
대전교육사에서 윗기수 고참들이 시키는대로 내무반장인 하사관한테 경례를 안하고 얼버무리다가 개머리판으로 가슴을 맞기도하고,구대근무라는 허울좋은 감투??때문에 화장실에서 낮은포복으로 기어서 화장실을 딱기도하고,변기에 머리박아(원산폭격)도 부지기 수로 하면서 그래도,동기생의 끈끈한 정이 있었는데 자대에 배치받고 사고치는 동기생들(물론 나도 포함하여)이 왜 그리 미워보이던지...
그놈의 기수표(고참들의 신상명세서로 몇기,어디출신등)를 구구단 외울때보다 더 심하게 재래식야외화장실에서 화장지버리는 구리스깡통을 엎어놓고 밤새 외우다가 못외우면 들어오지 말라는 대왕고참의 말을 순진하게 듣고 안들어갔다가 야간순찰근무하는 병장한테 걸려서 내무반 전체가 떠들썩했던일....
강산이 두번 변하여도 절대 잊을수 없는 푸른 제복그때....
제대후에도 몇번 나에게 찾아오던 동기생이 그가 결혼하는데 내가 바빠서 가지 못하고,그리고 이민을 오고
그리고 못내아쉬웠던 그 친한 동기생을 어제 인터넷
사람찾기코너를 통해서 찾게 되었읍니다.
정말로 반갑다,자주 연락하마던 그의 멜을 보면서
정말로 주마등처럼 군생활이 떠오르고 마치 오래전 우리동네에 떠돌던 야매극장(이동천막극장)의 한장면 같이 지나가지 뭐겠어요.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시절을 주절거려 보려고 합니다.
퉁퉁 불은 라면을 먹기 싫어서 일찍식당까지 장거리를 갔다오면 두그릇을 먹어도 허기가 지던 그시절...
보름에 한번씩 나오는 건빵을 쫄따구인 우리 관물함에 넣어 놓고 고참이 건빵먹고 싶다면 얼른 갔다 바치고 담배를 꺼내면 얼른 재떨이 가져다 바치던 그때...
대전 교육사에서 신정날로 기억하는데 대통령하사품이라고 과자부스러기를 감사하다고 먹고 그날저녁 전체우리 기수들을 집합시켜 멍석말이하듯 간이연병장을 구르고 또구르고,피튀기는 피티체조에 정신이 반은나간 상태에서 뒤로 취침,앞으로 취침을 수십번그리고 그대로 누워서 어머니의 은혜를 부르라는 조교,
누군가가 흘쩍이고 그전염병은 전체로 번저서 울음바다가 되고 명절인데 이렇게 심하게한 것은 딴생각 말라는 거였다는 말말말...
짬밥이 얼어 붙어 있는 야외짬밥(잔반)을 주워먹은 동기생때문에 또 구르고,너희가 여기아니면 어디가서 굶주려 보겠냐면서 시사에 대한 묵념 식사개시 식사끝이세마디가 단5분만에 다이루어 지던 그때,아무생각없이 국에 밥을 말고 퍼넣다가 아쉬운 식사끝,퇴장의 소리에 물러나,잡념을 없앤다는 명목하에 잠시도 쉬지않고 이어지던 군가에 구보...
식당에서 일하던 동료가 가져온 누룽지를 점호가 끝나고 먹을 때 그 누룽지맛은 정말로 맛있었죠.
그래도 자대가면 나을 거라는 기대로 참고 견뎠는데
자대엔 호랑이 고참들이 기다리고 있었죠.
다음이야기는 다음호에




우리 야전정비대대는 끝발 없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대인데 그중에서도 검사중대는 비행기 주기별로 검사를 수행하는 중요한 중대임에도,사고가 나건 안나건 아주 피곤한 중대인데다 9시 정시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하는 몇안되는 부서이다 보니,아주내무반 생활이 고로웠다.
9명이나 되는 동기들,이등병부터 막병장달때까지 사고를 수시로 치는 동기들때문에 또는 아래 쫄따구들 때문에 정말 고참들 한테 맞기도 많이 맞았다.
물론 당시에도 구타금지 지시가 내려오고 내무반마다
구타금지각서를 써서 사인하여 비닐로 싸서 걸어 놓았지만 밤에 점오끝나고 맞기도 하고,아니면 밖에 불려나가서 맞기도 하고,한번은 너무 맞아서 그다음날 외박을 나가는데 외박신고 하러 대대본부에 가다가 계단을 겨우올라가고 물론 버스를 몇번이나 갈아타야 갈수 있어던 시골집까지 가면서 그끌리는 다리고 억지로
시골에 다녀온적도 있었다.
시골이 충북이고,근무지가 경남이다 보니 대구를 거치거나 아니면 아예서울로 돌아 오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 외박엔 반기던 시골의 어머님도 횟수가 늘어나면서 왔냐~~~
대전교육사에서 윗기수 고참들이 시키는대로 내무반장인 하사관한테 경례를 안하고 얼버무리다가 개머리판으로 가슴을 맞기도하고,구대근무라는 허울좋은 감투??때문에 화장실에서 낮은포복으로 기어서 화장실을 딱기도하고,변기에 머리박아(원산폭격)도 부지기 수로 하면서 그래도,동기생의 끈끈한 정이 있었는데 자대에 배치받고 사고치는 동기생들(물론 나도 포함하여)이 왜 그리 미워보이던지...
그놈의 기수표(고참들의 신상명세서로 몇기,어디출신등)를 구구단 외울때보다 더 심하게 재래식야외화장실에서 화장지버리는 구리스깡통을 엎어놓고 밤새 외우다가 못외우면 들어오지 말라는 대왕고참의 말을 순진하게 듣고 안들어갔다가 야간순찰근무하는 병장한테 걸려서 내무반 전체가 떠들썩했던일....
강산이 두번 변하여도 절대 잊을수 없는 푸른 제복그때....
제대후에도 몇번 나에게 찾아오던 동기생이 그가 결혼하는데 내가 바빠서 가지 못하고,그리고 이민을 오고
그리고 못내아쉬웠던 그 친한 동기생을 어제 인터넷
사람찾기코너를 통해서 찾게 되었읍니다.
정말로 반갑다,자주 연락하마던 그의 멜을 보면서
정말로 주마등처럼 군생활이 떠오르고 마치 오래전 우리동네에 떠돌던 야매극장(이동천막극장)의 한장면 같이 지나가지 뭐겠어요.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시절을 주절거려 보려고 합니다.
퉁퉁 불은 라면을 먹기 싫어서 일찍식당까지 장거리를 갔다오면 두그릇을 먹어도 허기가 지던 그시절...
보름에 한번씩 나오는 건빵을 쫄따구인 우리 관물함에 넣어 놓고 고참이 건빵먹고 싶다면 얼른 갔다 바치고 담배를 꺼내면 얼른 재떨이 가져다 바치던 그때...
대전 교육사에서 신정날로 기억하는데 대통령하사품이라고 과자부스러기를 감사하다고 먹고 그날저녁 전체우리 기수들을 집합시켜 멍석말이하듯 간이연병장을 구르고 또구르고,피튀기는 피티체조에 정신이 반은나간 상태에서 뒤로 취침,앞으로 취침을 수십번그리고 그대로 누워서 어머니의 은혜를 부르라는 조교,
누군가가 흘쩍이고 그전염병은 전체로 번저서 울음바다가 되고 명절인데 이렇게 심하게한 것은 딴생각 말라는 거였다는 말말말...
짬밥이 얼어 붙어 있는 야외짬밥(잔반)을 주워먹은 동기생때문에 또 구르고,너희가 여기아니면 어디가서 굶주려 보겠냐면서 시사에 대한 묵념 식사개시 식사끝이세마디가 단5분만에 다이루어 지던 그때,아무생각없이 국에 밥을 말고 퍼넣다가 아쉬운 식사끝,퇴장의 소리에 물러나,잡념을 없앤다는 명목하에 잠시도 쉬지않고 이어지던 군가에 구보...
식당에서 일하던 동료가 가져온 누룽지를 점호가 끝나고 먹을 때 그 누룽지맛은 정말로 맛있었죠.
그래도 자대가면 나을 거라는 기대로 참고 견뎠는데
자대엔 호랑이 고참들이 기다리고 있었죠.
다음이야기는 다음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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