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달을 배아퍼서 나을때 까지 힘든 고통
나을제 그괴로움..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두꺼비 등가죽 같이 되시고..
입을 것 제대로 못입고,먹을거 제대로 안먹고 허리가 휘도록 밭으로 논으로 평생을 다니신...
오늘은 저녁에 일하러 가다가 차에서 갑자기 옛날 87년도 12월에 대전교육사령부에서
기본군사훈련 받을 때가 생각이 났읍니다.
그때가 크리스마스였는지,신정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뭏든 명절이었던 것은 확실하고...
청소와 관물함 정돈등...하고 하루가 거의 다가고 저녁을 먹고 내무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훈련병 전원 서편점오장으로 선착순 집합~
우다닥...다들 급하게 옷을 주워입고 군화끈도 제대로 매지않고
바지 단추도 안잠그고 점오장(맨땅)에 집합하니 이미 나와 있던
내무반장들이 (하사관)
"이새끼들 동작들 봐라...군기가 빠져가지고..."
그리고 10명까지 끊어서 나머서 선착순 화장실 돌고 와
10명은 엎드려 뻣쳐...
그렇게 시작된 그 저녁은 오리걸음,좌로 굴러 우로 굴러,앞으로 취침,뒤로 취침,
푸시압~등 갖은 기압을 받고 온몸은 맨땅을 굴러서
흙으로 얼룩진 군복색이 황토색으로 변하고 추운날씨에도 땀이 비오듯 했다...
그렇게 굴려 놓고
뒤로 취침하더니 군가를 몇곡 부르게하고
나중에 "어머님 은혜" 부르게하는 거였다.
나실제 괴로움 다잊으시고오~ 기르실제 밤낮으로 고생하셨네...
진자리~
하다가 어느 누군가 울음보를 터트렸고,참고 있던 전체훈련병들이 다들
울음바다가 되었다.
오늘 차에서 그 어머님 은혜를 갑자기 몇소절 부르다 눈물이 주룩 흘러 내렸다.
목소리도 그때 그겨울처럼 떨리고...
군대 간다고 직장을 그만 두고
충주댐 수몰지역에 돌쌓는 일을 따라 다녔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그리고 돌이 굴러내리면 다칠수도 있는 거라....
하지만 기술자형님이 계속 우리 따라다니자고 꼬실 정도였다.
그리고 군대 가기전 그동안 계속 배추를 리어커에 실어다 팔았는데
이제 한번만 더 가면 다 팔수 있을 거라면서 어머니가 나보고 가자고 하셨다.
"엄마 나 낼 군대가요.!"
"그럼 어떻하냐.얼려서 버려!"
아버지는 날마다 경로당에서 친구분들과 술과 고스톱을 하고 계셨고
내가 아니면 리어커를 끌고 모란다리 높은 곳과
제천역전앞 역직원들 관사의 경사진 곳을 오르지 못할 거라고 하셔서
추운 날 동동거리고 손님을 기다리다 정말 그 경사진곳을 끌고 가서
배추를 팔았었다.
남들은 군에 가면 식구들이 따라온다던데...
난 혼자 기차를 타고 대전교육사까지 갔었다.
그리고 35개월 군생활을 하면서 물론 외박을 자주 나오긴 했지만
누구 면회한번 온적이 없다.
쫄병땐 그게 얼마나 그리 부럽던지...
힘들고 괴로울때...가족이 됐던 애인이 됐던 와서 잠시라도 그고통에서 벗어 난다는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훈련원에서 군대가서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받고,직장을 다니다 군에 가고
군제대후 요리사가 되겠다고 50만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학원비와 독서실비내고 남는 돈이 없어서
주점에서 숙식을 하며 일하고 학원다녀 직장을 잡고
하는 사이 주민등록초본의 종이가 모자랄 정도로
월세방을 참 많이도 옮겨 다녔다.부천,회기동,남가좌동등...
그리고 결혼을 하고
이민을 왔으니
어머니와 같이 산것은 고등학교때까지
후엔 집에 가면 꼭 손님같은 느낌이었다.
객지로만 떠도는 아들이 싫어서
아버지는 면서기시험이나 보라니까 대학은 무슨이라고 하셨고.
그런 아버지도 3년전에 열차사고로 돌아 가시고
임종도 못하고 장례가 끝난다음에 도착했었다.
이억만리 머나먼 타향으로 이민와서
이젠 서울에서 처럼 버스타고 훌쩍 갔다 올수도 없다.
전화도 자주 못드린다.
전화해도 큰아들 목소리도 몰라서
"누구세유~"
하시는 엄마.
그래도 가끔씩 어머니 생각을 하고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민온후 13년동안 아직 손주녀석을 보지 못한
어머니,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쓰리다.
지금 나도 5달동안 우리 쌍둥이랑 떨어져 산다.
아이들은 벤쿠버,나홀로 프린스 조지에서 식당을 한다.
직원을 구하지 못해 혼자 캐셔에 주방요리에 설겆이,시장보기,청소
아침6시반부터 밤12시까지 바쁘게 뛰어 다니다 보니
혹 어머니가 잘못되시기라도 하면 어떻하나 하는 걱정도 된다.
문닫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안타까운 마음에 더 마음은 쓰리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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