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

버스안내양의 추억

테리(전재민) 2007. 2. 1. 18:01

우리 동네 버스사진이 없어서 서울사진을 ...

 

 중학교때 난 지각대장이란 칭호가 붙어 있었다.

시내까지 들어와서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야 하는 중학교때문이다.

새벽밥을 해먹고 6시 첫차을 타기위해 집에서 나와도

차가 정차도 않고 그냥 내뺀다.

그리고 또다른 버스를 기다리고 그냥가고 그러다

정거장이 아닌 저앞에 버스를 세우고 내릴사람만 내리고

출발하려는 버스에 간신히 매달린다.

안내양은 빨리 안으로 들어 가라고 재촉하고

그 풍성한 가슴으로 등뒤를 사정없이 밀어댄다.

버스기사는 버스기사대로 반대편으로 쏠리게 핸들을 꺽어

반대편으로 쏠린틈에 얼른 올라서고 안내양은 문을 닫고...

반대편에 서있던 아이들은 죽는다고 아우성이고...

 

집으로 돌아오던길도 별반 다를게 없다

몇대를 놓치고 뒷창문으로 아는 놈한테 가방을 던져서

맡기고 버스를 타는 것 까진 좋았는데

버스에 사람들이 많이 타 내릴때까지 가방근처에도 못가다

집에서내려 창뒤로 가 책가방을 받고 버스는 떠났는데

가방의 무게가 다른듯(모양은 같고)해서 보니 내것이 아닌 다른애 거다.

다행히 주소가 나와 찾아간곳은

10정거장도 더가는 먼 면소재지 근처...

그때 정말 난감했었다.

 

그때 그 예쁘장하던 안내양들은 지금은 다 시집가서 아이들 큰 중년

아줌마 되어 있을게다.

 

 

버스를 겨울에 타면 그래도 괜찮다.

추운날씨탓에 밀착하여 훈훈하고 내의지랑 상관없이

여학생들과 딱붙어 있을때도 있었으니....

그런데 여름은 정말 지옥이었다.

더운날씨에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타고 땀은 줄줄흐르고

거기다 누군가 방귀라도 실례하면 완전히 가스실이 따로 없다.

 

그리고 날마다 버스에서 만나는 얼굴들

여학생들한테 잘보이려고 없는 형편에도

교복은 맞추어 입었다.

사실 교복을 처음부터 맞추어 입은 건 아니고

어머니가 사준 교복을 입고 중학교 1학년 소풍때

용바위로 소풍을 갔는데 가서 춤추고 놀땐 좋았는데

자리에 앉았는데 엉덩이가 쫙 바느질부분이 다튿어져 버린 거였다.

가방으로 가리고 겨우 집에 까지 왔지만 그때 그기분이라니...

그래도 그게 이름있던 댄디교복이었건만...

그후 교복은 양복점에서 맞추어 입었다.

멋지고 폼나는 것도 폼나는 거지만 바느질부분이 쫙 튿어질 염려는 없었으니까.

주머니늘 사선으로할땐 그 유행을 따르고

엉덩이에서 바지 하단까지 뚝떨어지는 유행엔 또 그렇게

아님 딱들어 붙는 쫄바지형태(근데 이건 불편해서 후엔 다시는 하지 않았다.)

 

여름에 땀내나는 버스릉 안타려고

그리고 지각좀 안해 보려고 자전거를 배웠다.

큰자전거에 다리를 안장아래로 다리를 넣고 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난 그냥 안장을 낮추어 탈수 있었는데

도로에서 연습하다...벼심어 놓은 논에 거꾸로 쳐박히기도 하면서

혼자 터득해서 학교를 타고 다녔는데 겨울엔 버스를 탔다.

비올때도...

 

 

 지금 시골어딘가에 이렇게 관광용으로 안내양이 있는곳이 있다고 한다.

추억을 곱씹으면 옛생각에 잠기게하는 하지만 그 만원버스 안냉양은

영영사라진 거다.

 

서울서 호텔다닐때 집이 인천이라 버스를타고 전철역으로 그리고 신도림역에서 갈아타고

홍제동까지...그렇게 다닐때도 호텔의 특성상 아주 만원지하철은 시간이 맞지 않아

타지 않았었다.물론 푸시맨을 보긴했어도 푸시맨한테 당하진 안았다.

 

지금은 캐나다 시골에 어쩌다 보게되는 버스를 보면서

가끔은 옛날일을 떠올린다.

이곳캐나다는 대중교통수단이 안되어 있어서 자가승용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노선도 빙빙돌고 없는 곳도 많고

추운 겨울 영하 30도가 넘을땐 버스기다리는 사람들 보면 정말

대단하단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같으면(시골) 태워주기도 하겠지만

이곳엔 사람을 믿을 수 없어서 그러기 힘들다.

 

지난 19일 뉴저지주에서 강가에 세워둔 차들...

 

빙하기가 곧닥칠것 같은 예감...